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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읽기] 틈새(이혜경)

by 칼랭2 2023.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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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틈새≫내용요약

가전제품 대리점을 경영하고 있는 ‘나’는 중고등학교 동기동창인 영석의 집으로 냉장고 수리를 하러 간다. 학창시절 영석은 전교1등을 맡아서 하던 눈에 띄는 학생이었던 것에 반해 그는 ‘표 안 나는 학생’이었다. 성적이 좋지 않아 기술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와는 너무도 달랐던 영석이 고향으로 내려와 형의 도움으로 우주슈퍼라는 이름의 작은 가게의 주인이 되었다.

아내는 갑자기 일을 하겠다고 나서고, 그는 일명 ‘선수’로 통하는 현태가 한 말을 떠올린다. ‘살림만 하는 여자들의 권태가 얼마나 무서운가’하는 것에 대해. 우려했던 바는 현실로 나타나, 아내는 카페를 열겠다고 하더니 결국 단란주점을 차린다. 게다가 낯선 도시에서 바람피우는 현장을 현태에게 목격당하기도 한다. 겉잡을 수 없이 ‘그’로부터 빠져나가려 하는 아내는 급기야 ‘이혼하자’고 선언하고, 아내의 태도에 그는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 자각은 자살충동으로까지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영석을 만나러 간 그는 영석의 인생이 포스터 한 장 때문에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종묘상에 걸려 있던 그림이 새가 아니라 떡잎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보여? …… 보인단 말이지? 전기가 흐르는 길이.

〃고장은 별거 아니었다〃

영석이네 집 냉장고의 고장은 별것 아니었고 그래서 쉽게 고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고장은 다른 곳에서 나서 어쩌면 언젠가부터 그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신호는 그에게 미처 다다르지 못하고 아내를 만족시켜줄 수 없었던 그는 하릴없이 아내를 놓쳐버리고야 만다.

그는 무력하다. 왜 이혼을 해야 하냐고, 내가 못 해준 건 또 뭐가 있냐고 따지지도 못한다. 그는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 ‘당연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을 때에는 위험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깨닫는 순간 죽음충동이 인다.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 죽음은 ‘존재하지 않음’을 깨뜨릴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기술학교에 들어갔을 때, 선배들은 물었다. ‘보여?’ 아무 것도 모르던 순진한 청년, 그는 호기롭게 대답했다. ‘보입니다!’ 선배들은 비웃었다. 선배들이 보이냐고 물었던 것은 전선 자체가 아니라 ‘전기가 흐르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말 전기기술에 익숙해지면 보이게 되는 걸까. 그런 질문은 차치하기로 하자. 하지만 어쨌든 그가 전기가 흐르는 길을 볼 수 있을 정도의 기술자가 되었을 때, 그는 보지 않아야 할 것까지 보게 된 지도 모른다. 굳이 말하자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랬다. 그는 아내의 외도 때문에 ‘죽는 게 낫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그런데 왜?”라는 질문이 남는 것이다. “그런데 왜 죽어야 해? 죽기로 결심해야 해? 그리고 왜 하필 그게 농약이어야 하는 거지? 먹으면 괴롭다는데, 새가 그려져 있었으니까?” 마치 그를 죽이기 위해 작가가 아내를 외도하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리고 영석을 만나게 한다. 그리고 ‘소설에서만 등장할 법한’ 대사를 지껄인다. 뜬금없이……작가 자신도 ‘느닷없다’고 시인한, 어쩌다 그렇게 되었냐는 질문에 영석은 역시 뜬금없이도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포스터 때문이었다고.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에게 든 생각은 ‘아, 이 소설은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거로군!’이었다.) 그리고 그 포스터 덕이었는지 새인 줄 알았던 그림은 ‘새순’이었음이 판명난다. 과연 새와 새순의 차이는 뭘까. 이 점도 의문이 남지만 어쨌든 새순은 좀더 희망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희망에 여전히 미심쩍은 구석이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석의 집에서 보게 된 비디오. 그것은 ‘방공호’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거기서 백인의사는 ‘지구상의 생물이 멸종해도 1년은 버틸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에 이어지는 작가의 태도는 어쩐지 시니컬하게 읽힌다. ‘지구가 멸망하고 알던 사람들이 다 재가 된 뒤에까지 살아남겠다는 욕망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과연 희망에서 나오는 것일까. 대지의 틈을 뚫고 나오는 여리디여린 새순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문장도 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정돈된 이 소설을 읽다가 작가의 문체는 그 작가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다소곳하면서 부드러운, 매끄러운 문장들과 그것들이 촘촘히 설계되어 배치되어 있다는 점은 이 소설의 강점으로 읽힌다. 그러나 딱히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진부한 일상을 끌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새로움을 심어주려는 힘을 묘사에만 의존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잦은 회상은 때때로 설명으로 읽히기도 했고 지루함을 주었다.

 

 

하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뒤늦게 생각하는 것이지만, 영석의 아내도 어쩌면 머지않아 그의 아내처럼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멋모르고 돌리면 멀쩡해지는’ 가전제품을 굳이 수리해달라고 외간남자를 부르는 여자에게도 이미 권태의 위기감이 싹트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고장은 별거 아니었다’는 시작이 주는 아이러니는 다른 기술적인 문제들이 소설을 덧없이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운을 남기는 것이었다.

 

 

 

틈새

이 소설의 제목은 ‘틈새’이지만 여전히 나는 그 의미를 파악할 수가 없다.

도저히 ‘해설자’의 해석은 동의할 수가 없고

작가가 ‘틈새기에 끼인 채’ ‘간판의 도형 속으로 빨려 들어갔’듯이

그것의 의미도

어딘가로 빨려 들어간 것만 같다.

 

200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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