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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글/음악 이야기

[음반]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 - '한국적인 음악'이란 바로 이런 것!!

by 칼랭2 2022.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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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좀 쳐진다 싶을 때, 어떻게 기분전환을 하시나요? 저는 '민중가요'를 듣습니다. 민중가요를 들으면 정말이지, 산 정상에 오른 것처럼, 시야가 확 트이고 정신이 번쩍 듭니다. 그렇다고 제가 '운동권' 출신이거나 한 건 아니예요. 사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기에는 학생운동도 점차 저물어가던 시기였고, 중고등학교때 최류탄 냄새를 하도 맡아서 '운동'의 가치를 '뇌'로는 알아도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쉽지가 않았거든요. 게다가 집단으로 움직여야 하는 운동의 특성이, 저의 개인주의와 맞지 않기도 했습니다. 저도 스무살 때, 시위에는 참가해 봤습니다만, (딱 한 번, 얼떨결에?) 역시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학생운동을 했거나, 혹은 그런 추억과 향수에 젖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 '민중가요'를 좋아했었던 사람인데요. 고교시절 국어선생님들로부터는 참여문학이란 것의 문학성이 순수문학과 비교하였을 때, 수준미달인 경우가 많다, 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제가 느끼기에 '민중가요'의 가사 중에는 문학성이 뛰어난 것들이 아주 많았어요.

 

전 요즘도 '바위처럼'이나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노래를 듣고 다닙니다. 김광석의 노래도, 안치환의 노래도 종종 듣지요. (요즘엔 '타는 목마름으로'가 왜 이렇게 좋은지, 노래 마지막 부분의 '민주주의여 만세'를 들으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고등학교때 안치환의 테잎을 사서 듣고는 깜짝 놀랐었는데요, "창살", "피", "투쟁" 뭐 이런 단어가 노랫말로 쓰인다는 것이, 꽤나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그때 '김수영'시인에 빠져 있었고, 그의 시에는 뭐 욕도 나오고 침도 뱉고 은밀한 부분을 지시하는 단어도 나왔기 때문에, '시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틀 때였습니다만은.)

 

그런데 이 자극적인 단어들이 어느 순간에는 그리워지더라구요. 그래선가 오히려 "우리가 어느 별에서"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보다 "솔아 푸르른 솔아"나 "마른 잎 다시 살아나"같은 노래를 더 좋아했습니다.

 

민중가요 하면, "아침이슬"을 빼 놓을 수가 없죠. 양희은씨는 "그 노래 민중가요 아니다."라고도 말씀하시는 것 같지만, 여전히 시민운동에서 빠지지 않는 노래,인 것 같습니다. "아침이슬"도 그렇고 "늙은 군인의 노래"도 그렇구요. 김민기씨가 양희은씨와 작업한 양희은 1집은 검열제도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었다고하는데요, 이보다 더 문제가 되었던 음반이 "공장의 불빛"이었습니다.

 

음반 '공장의 불빛'

 

「한국 팝의 고고학 1970」에 따르면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은 민중가요의 효시로 꼽히기도 합니다. 이 음반은 김민기가 사람들을 모아 제작한 '연극(이른바 '노래극')을 녹음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노래극엔 '메시지'가 있었고, 이걸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합법적으로 배급될 수 없었고, 불법 테이프가 되었습니다.

 

노래굿 '공장의 불빛'은 1978년, 은밀히 제작되어 유통되었던 음반이었다가, 2004년에 정식 음반으로 빛을 보았습니다.

 

재탄생한 '공장의 불빛'에는 이소은, 이승렬, 이적 등 우리 귀에도 익은 가수들이 노래꾼으로 참여를 했습니다. 

 

음반 '공장의 불빛'

김민기씨와 뮤지컬 작업을 같이 했던 배우들의 노래도 담겨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은 '장현성'씨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뮤지컬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보면 더욱 낯익은 이름들이 보이겠죠. 

음반 '공장의 불빛'

김민기씨가 운영하고 있는 '학전'이란 극단에서 '설경구'나, '황정민', '안내상' 등이 활동했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음반 '공장의 불빛'

 

장현성씨가 참여한 노래 '야근'은 제가 이 음반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랩니다.

 

음반 '공장의 불빛' 가사지

저희 아버지가 예전에, 작은 공장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이 노래를 들으면 옛날 생각이 납니다. 가족 단위 공장이라 외려 사장이 더 못 살았던 공장이었거든요. 그래선가 이 노래 가사가 귀에 쏙쏙 박힙니다. 

 

김민기 - '공장의 불빛' ("야근" 원곡버전)

도대체 누구를 위해 '야근'을 하고, 누구를 위해 미싱질을 했었던 걸까요? 젊어서나 늙어서나 죽어라고 일만 해야 하는 우리네 어르신들의 과거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들여다 보게 하는 노랩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플레이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노래의 형식이 참 독특합니다. '마당극'의 느낌이 많이 나죠. 멜로디도 '판소리' 같아서 어깨가 덩실덩실 춰지죠. 

힘겨운 '노동자로서의 삶'을 사는 소시민들의 '긍정'을 온전히 표현하고 있는 노래극 '야근'을 비롯해, 6~70년대의 풍경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음악들로 채워진 '공장의 불빛'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을 가라앉게 하는 개인적인 불안과 공포도 웬만큼은 씻겨 나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테면 저에겐 '반창고' 같은 음반이죠.

 

판소리하면 '해학'이나 '풍자'라는 말이 떠오르는데요. 이 음반이 갖고 있는 가장 큰 가치는 바로 '해학' 같습니다. 노래는 귀에 듣기 좋고, 흥겨웁지만 그 안에 담겨진 가사는 가슴 아프기 짝이 없습니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라는 노랫말도 있지만은요. 웃음과 눈물이 깍지를 끼고 있는, 전통예술의 특색이 고스란히 담긴 "공장의 불빛", 많은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아름다운 노래들로 채워진 이 음반은 DVD와 CD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김민기 - 공장의 불빛(1978년 DVD)

DVD에는 1978년 당시의 녹음분이 수록되어 있어요. 사실 전, 1978년의 소리가 더 좋습니다. CD는 총 20곡의 노래극(노래굿)으로 구성되어 있구요 흥겨운 노래부터 처절하게 슬픈 노래까지, 다양하게 담겨 있습니다. 

 

가사집은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로 제작되어 한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국 사람들도, 극의 의미, 노랫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매력적이네요.

 

공장의 불빛에 수록된 곡들

 

어느 가수가 전통 악기를 음악에 사용하면 그것만으로도 높이 평가받기 쉽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갖던 시기는 학생운동이 한창이었던 7~80년대가 아니었나 싶어요. 아마도 그때가 대한민국의 성장기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국적인 팝'에 대한 음악인들의 깊은 관심 속에서 많은 명곡들이 탄생했던 시기, 그때 김민기의 '공장의 불빛'도 작은 불빛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이 음반이 나오던 1978년 당시 발표된 노사연의 데뷔곡 "돌고 돌아가는 길"같은 곡은, 우리나라에서밖엔 나올 수 없는, 전통음악이 적절히 녹아 있는 곡이기도 하죠. 한스러운 멜로디로 시작해서 템포가 빨라지면서 덩실덩실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곡의 구성이 정말 매력적입니다. 이런게 정말 한국적인 것 아닌가요?
전통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지금, 우리의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노래극 '공장의 불빛'. 요즘 노래에 지치셨다면 한 번쯤,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입에 착착 감기는 그의 노랫말을 따라 부르면서 말이죠. ^^

 


2010년에 올렸던 글을, 살짝 수정해서 올립니다.

글을 썼던 날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은 '전통음악'도 하나의 힙한 장르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 교과서에서 국악이 빠진다는 소식은 역시나 충격적인 일이긴 하지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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