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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읽기(책)

[에세이] 임박한 파국 - 슬라보예 지젝(꾸리에 출판사, 2012)

by 칼랭2 2022.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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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가 죽었다. 

신문들은 저항 시인이 죽었다고 떠들어댔다.

그의 변절로 '저항 시인'이란 글자가 퇴색되었음에도, 신문들은 어리석게 떠들어댔다. 

오늘 나는 이 글을 찾았다. 

지젝의 책을 읽은 후, 감상을 적은 것이었는데 거기 김지하에 대한 글이 있었다.

글은 2013년의 것이었다.

2012년, 김지하는 박근혜를 지지했다.

그의 변절은 너무 오래되고 낡은 것이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탄식했다.

 

김지하의 죽음은 잠깐의 뉴스로 지나갔다.

자신의 문장을 배신한 자의 말로.

문득 생각한다.

나의 죽음은 어떤 죽음이 될까.

2013년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겨 적는다.


김지하가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선언을 했을 때, 나는 김지하가 망령이 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은 내가 그저 김지하를 몰라 그랬던 거지, 김지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 공산이 크다. 사상을 바꾸고 세계관과 인생관을 바꾸는 일이란 건, 뼈를 뒤틀어 버리는 일 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가 지금의 생각을 갖기까지 그런 고통이 있었을 것 같지가 않다.(그가 수감 생활을 해서 그렇게 되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질 않는다.)

책 '임박한 파국' 표지

사실 김지하의 문제는 그가 보수를 옹호한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새누리랑 민주를 두고 진보니 보수니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기도 하고) 다른 생각은 딱 잘라 무시해 버리는 데 있었다.

나는 건강한 보수야 말로 이 나라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철수의 행보에도 관심이 갔던 것이지만(2014년 언제였던가, TV방송에 나와서 '말'을 하는 걸 보고, 가난한 자에 관해 '시혜적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고, 진작에 내가 좋아할 부류의 사람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지만) 김지하의 '지지 선언'은 건강한 보수의 시작이라 볼 수 없었다. 갈 곳을 잃은 변절자의 안쓰러운 발걸음일 뿐.

 

 

여하간, 지젝의 책을 읽다 보니 이해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작가란 존재들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것. 그러니 일제 때 많은 작가들이 제국주의에 헌신한 게 아니겠나? 

 

그러자 지젝은 시인들이야말로 가장 먼저 파시스트들의 앞잡이 노릇을 했으며 예술의 비결정성은 기회주의의 원동력이었다고 지적했다. 고문의 순간에도 시인들은 타인의 고통을 묘사하는 데만 정신을 판다고 했다.

 

작가들 중에 운이 좋아 사기꾼이 안 된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는 요즘 빈번히 일어나는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한다. 현대사회는 너무 많은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일종의 아노미적인 사건들이 터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보스니아 인종청소를 예로 들었다. 다소 프로이트적인(?) 분석이 아닐까 생각했지만(본연의 욕구가 무의식적으로 표출된다는 얘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얘기였다.

 

나는 성범죄가 근래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한 국내 상황도 금기에 대한 반응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과거와는 인식이 많이 달라져서 전보다 많이 '사건'이 발견되는 경향이 더 크다고 본다. 이십 년 전만 해도 성범죄는 다 여자 잘못으로 치부되었다. 더욱이 언론의 힘도 작용했을 터.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전시하는 언론은 '폭로'로 위장된 '포르노'를 즐긴다.)

 

이제 거의 다 읽었다. 지젝 책의 매력은 단숨에 읽힌다는 거다. (물론 이 책은 지젝이 쓴 책은 아니다. 지젝의 강의를 정리해서 임민욱, 홍세화 작가가 쓴 것이다.) 모호하고 어렵게 말하는 철학자를 경계하라고(특히 자기 같은 철학자도 경계하라고) 그는 늘 말하는데, 최소한 소통이 뭔지는 아는 사상가라서 그의 책은, 어쩔 수 없이 사게 된다. (뭐 내가 태생부터 구조주의자여서이기도 하겠지만)

 

좌파가 반성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말해야 한다고 하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지금 이 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문 후보의 패인분석에도 등장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더 중요한 건 좌파/우파에 관한 제대로 된 인식같다.

 

그러니 제일 필요한 건 '사랑'이 아닌가? 사랑을 하면 그 사람의 모든 걸 알고 싶은 법이니, 사람들이 서로 사랑을 해서 서로에 대해 더 알게 되면 좋겠다(라고 말하면, 공상같을 수도 있겠지만).

 

자기 생각과 다르면 좌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체제를 유지하려는 세력이 우파고 체제를 바꿔 보려는 세력이 좌파다. 그게 기본 개념이고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좌파는 없다는 것이 좌파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나마 있는 중도좌파는 익히 알고 있듯 힘이 없고 얼마 전에는 남은 힘마저도 스스로 고갈시켜버린 듯하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바꿨다. 대안 세력이 힘을 줄 게 아니라, 가장 좌파적인 생각에 힘을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차안이 아니라 최선안을 생각해야겠다고.


그리고 나는, 7개월 뒤 성남에서 일하게 되고, 이후 1년 뒤 이재명 지지자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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