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텍스트 읽기(책)

[에세이] 강준만,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국가와 권력은 어떻게 성을 거래해왔는가'

by 칼랭2 2022. 5. 13.
반응형

충동대출은 했지만, 역시나 단시간에 읽히는 강준만의 책이었다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실망'!

 

"어쩌면 강준만은 원래부터 '중립'을 무기로 회색적 입장을 고수하던 사람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심어준 책.

책은 일제시대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신문기사', '서적 발췌문' 등을 인용해 가며 한국 매매춘의 역사를 논하며, 성매매가 끊이지 않는 원인을 찾기 위해 용을 쓰지만 결국은 핵심을 집어내지 못하고 "그러니까 박정희가 나빠"식으로 꼬리를 내리는 느낌이었다.

적어도 한국의 매매춘, 아니 성매매를 논하겠다고 한다면 최소한의 취재는 했어야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몇 년 전까지의 성매매 현실이라고는 해도 현실과 많이 동떨어진 느낌이었고 '그럴만 하니까 여자들이 성매매를 하는 거긴 해, 남자가 나쁘기는 해, 그래도 하고 싶어서 하는 여자도 있잖아.'라는 의견으로 성매매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키고 있는 것도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성매매가 끝나지 않는 본질적 원인은 뭘까?

내 생각에는, 성매매를 '욕망'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성매매 문제 해결의 발목을 잡는 것 같다'성교'라는 주제 자체가 '권력'의 문제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것이며 따라서 ''이라는 ''에 의해 '인신'이 종속된 이후에 벌어질 수 있는 온갖 폭력적 상황을 '욕망'의 문제로 치환해 버리는 일은 맹목적 자유주의(오로지 '자유'라는 이름 하나로 모든 것을 용인해 버리는! 인정사정없는 자유주의!)가 갖고 있는 무책임성을 폭로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흔히 하는 얘기: "남자들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이러한 욕망을 충족시킬 대안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합법적 성매매는 이루어져야 한다이런 얘기를 들은 성매매피해자 관련 기관의 사회복지사들이 흔히 하는 얘기: "그러면 살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이러한 욕망을 충족시킬 살인마트 같은 게 필요하겠네요." 

 

인신을 사고 파는 행위가 합법화되는 사회에서 '인권'이 온전히 지켜질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뉴스에 나오는 몇몇 사람들의 인터뷰만을 믿으며, "좋아서 한 여자도 있잖아."라는 우연적인 사실에 기대어서 "내 남자는 아니니까, 딴 남자는 하라고 해.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제대로 정신 박힌 여자라면 그런 데서 일 안하지. 나만 아니면 되지 뭐. 남이사 팔리든 어쩌든 상관 있어?" "나는 아니니까, 딴 남자는 하라고 해. 자기 돈 벌어서 자기 욕구 채우는 건데 뭐. 요즘 아이돌들도 다 야하게 입잖아. 조금 과한 서비스 아냐? 물론 나는 돈도 없고, 그러니 여자를 사지도 않겠지만,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니까? 맞지? ?"이라고 말하며, 현실을 외면한다아니, 현실을 모르면서 아는 체 한다.

 

내가 모르는 일에 대해,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

 

 

성매매피해여성은, 온갖 종류의 여성폭력피해(성폭행, 가정폭력 등)를 다양하게 겪은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성폭력 피해는 80%가 넘는 것으로 이야기되는데자포자기 상태로 "나는 더러우니까, 이런 일은 해도 돼. 이미 더러운 여자니까."라는 생각으로 별다른 거부감 없이 성매매에 유입되는 경우가 많다사실상 사회가 제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매매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인데 그 사회의 역할을 단순히 '국가'의 역할로만 한정해서 '요구'하는 것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남자들은 성을 사는 행위가, 폭력임을 알아야 하고 여자들은 내가 성이라도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음을 감사하고 앞장서서 그녀들을 이해해야 한다(미안한 얘기지만, 정말 많은 수의 남성들이 성을 산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구매자가 없다면 판매자도 없다는 사실!)

 

이렇게 말하면, 펄쩍 뛸 여자들이 많을 것 같지만 성매매피해여성들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왔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게 된다면 그 흥분이 경솔한 태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Naver 블로그의 제목은, 한 때 "당신이 읽을 수 없는 세상이 더 많아"였다.

 

우리는 자주내가 살지 않은 삶을 '안다'고 착각한다그런데 우리는 '내가 살지 않은 삶은 결코 알 수 없다'

 

나는 친족 성폭력을 당하지 않았고비록 가난했지만 대학에 보내주는 부모님이 있었으며 그 부모님의 사랑과 그 사랑을 받아줄 수 있는 '다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살던 곳엔'집결지'라고 부르는 '집장촌' 그러니까 홍등가가 있었고 동네 아이 누구라도 유입될 수 있었다그리고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인신매매를 위한 납치사건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내가 잘나서 그곳에 유입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정말,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폭력의, 그 폭력적 상황의 1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합법화'를 운운하며 '욕망'을 들먹이는 것은, 정말로 역겨워서 들어먹을 수가 없다.

 

운이 좋게 성매매현장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은나라의 지원을 받는 성매매피해자지원시설에 입소하여 직업재활훈련을 받을 수 있는데 그들에게 지급되는 식비는 하루 7,000원 정도이고(시설에서 식재료를 구입하는 데 대부분을 사용한다)

실질적으로 '용돈'의 개념으로 지속적으로 지급되는 돈은 '법적으로 없다'. 의료지원혜택, 직업재활훈련혜택, 법률지원혜택 등으로 살아가는 데 어려움은 없지만 상당수의 입소자들이 부모가 없거나 부모와 연락할 수 없는데 이 경우, 금전적 문제로 고통을 호소하다 이탈하는 경우도 많다(성산업구조의 특성상, 성매매피해여성들이 돈을 벌 수가 없기 때문에 무일푼으로 들어오게 되며 빚이 없으면 그나마 다행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 '심리치료'인데, 제대로 된 심리치료는 너무 비싸서 모든 피해자에게 충분히 제공할 수가 없다.

올해, 피해자지원기간은 연장되었지만 지원금 상향 조정된다는 얘기는 없는 상태이고 이런 상태라면 '거기보다 나은 수용시설'의 역할 이상을 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먹고, 자고, 치료받고,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열심히만 지낸다면, 직업훈련을 받고 취업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집은 몇 년 뒤... 알아서 구해야 한다.)

하지만 내 주머니에 십 원 한 개 없는 삶을, 당신은 상상할 수 있나?

 

그런 곳에서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들도, 기회가 있었다면

적어도,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면

혹은 부모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면

우리 사회가 그들을 충분히 사랑해주었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