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해의 가장 좋은 방법은 장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할리우드 장르의 구조 Hollywood Genres'라는 책을 쓴 토마스 샤츠(Thomas Schatz)가 한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알아보죠.
▣ 장르란 무엇인가?
장르라는 것은 감동이 일방적으로 만든 형식이 아니라 관객과 창작자가 함께 만들어 공고히 한 관습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무쌍하죠. 응? 무슨 말이지?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그것이 '관습'이고 어떤 '형태', '틀'이라면 바뀌지 않아야 정상이겠죠. 틀이란 건 딱딱하고 고정되어 있어야, 내용이 벗어나지 않고 들어가기 마련이니까요. 장르는 딱딱하고 고정되어 있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르를 만들어낸 주체는 '감독' 개인 또는 영화 제작자 또는 영화 제작 집단이 아닙니다. 영화 한 편을 만든 건 그들이겠지만, 그 영화가 '장르'로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대중'이 중요하게 존재합니다. 어떤 영화가 대중의 호응을 얻게 되었을 때, 영화 제작 집단은 그 영화의 이야기나 형식을 반복합니다. 그러니까 대중의 호응과 영화 제작 집단의 반응이 반복되면서 '장르'라는 것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관객이 원하는 이야기의 형태로 굳어진 것을 바로 '장르'라고 합니다.
구체적이고 알기 쉬운 '예'를 들어 본다면, '액션 영화', '로맨스 영화', '코미디 영화'와 같은 게 있겠죠. 그러니까 이런 장르는 '선구자'적인 영화가 존재합니다. 그런 영화와 비슷한 영화들을 좀 더 발전된 형태로 반복해서 생산해내는 과정에서 '장르'라는 게 생겨나는 것이죠.
▣ 왜 뻔한 영화를 만들까?
그러면 다시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래, '장르'라는 게 그런 건 줄은 알겠어.
그런데 왜
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지를 않고
남이 성공시킨 영화를 따라서 만드는 거야?
자존심도 없냐?!
왜냐면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소설가 개인이 긴 시간 고뇌하여 한 편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치는 방식과는 다르게 만들어집니다. 물론 소설 한 편이 나오기 까지, 소설가 개인만 '노동자'로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요. 소설은 소설가만 잘 하면 되는 구조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편집자는 별 역할이 없어요.
여하간, 영화는 개인이나 소수가 노동자로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기본적인 비용만 있으면 가능한 '소설 쓰기'와 다르게 많은 비용이 듭니다. 그러니 당연히 '투자자'가 존재하죠. 투자자는 사회복지사가 아닙니다. 돈을 벌려고 하죠. 그러니까 영화 제작을 위해 고용된 많은 노동자들에게 돈을 줘야 하고, 투자자에게는 받은 돈 이상의 돈을 돌려줘야 하죠. 그러니 감독은 영화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합니다. 수요가 있는 상품을 공급해야 돈을 벌겠죠. 그래서 성공한 영화를 참고해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죠.
성공한 영화는 비단 '돈을 벌 수 있는 영화'이기만 한 건 아니죠. '관객이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창의적 활동의 결과물로 관객을 만족시키는 것이 모든 영화인과 예술가들의 꿈이겠죠. 그러니 관객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성공한 영화의 형식, 이야기 등을 따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속물적이다'라고만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 관객은 뻔한 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
실패하기 싫은 사람은 '감독'만이 아닙니다. 대중도 실패하지 않고 싶어합니다. 대중도 돈을 내고 영화를 보러 가기 때문이죠. 내가 낸 돈 만큼의 즐거움을 느끼길 기대합니다. 그런데 이 '대중'은 너무 새롭고, 낯선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익숙하면서도 새롭기를 바랍니다.
너무 욕심이 많은 것 아닙니까?!!!
제가 읽었던 '드라마 작법' 책 앞 부분에는 이런 글이 있어요.
드라마는 99%의 클리쉐와 1%의 창의성으로 만들어진다.
소설 전공인 저는 "헐~"을 연발했습니다.
아니 진짜, 자존심도 없냐!
그런데 이건, '예술병 걸린 사람의 넋두리'에 불과할 뿐이죠. 대중은 본인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듣길 원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되게 단순한 플롯을 선호하죠. 이야기나 형식의 참신성은 예술하는 사람한테나 중요한 겁니다. 대중에게는 '지금 내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이 필요하죠.
저희 어머니는 일일드라마와 주말드라마를 한 편도 빼 먹지 않고 보시는 분입니다. 한국의 일일드라마는 정말 몇 년째 비슷한 이야기 구조와 비슷한 캐릭터를 계속해서 우려먹고 있는 중입니다. 작년부터는 가족 한 명을 어디 숨겨 놓고 실종된 척 하는 설정이 반복되고 있더라고요. 출생의 비밀은 왜 안 없어지는지 도무지 모르겠고요. 아무튼 1,2화만 보면 어떻게 전개될지 뻔히 보입니다. 사실 저는 이 정도의 반복은 '게으름'이라고 생각하기는 합니다만은, 적은 예산으로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는 '일일드라마'의 제작 환경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까 제작비가 한정되어 있으니, 캐릭터가 많으면 안 됩니다. 몇 명의 배우들로 '극단적 갈등'을 만들어내려면, '막장' 스타일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트장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공간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한다는 점때문에도 스토리 전개의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일일드라마는 대체로 '주부들'이 보기 때문에, 다른 업무(설거지 등)를 하는 중에도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싸우는 장면'을 포함해 황당한 장면을 끼워 넣는다고 하죠. 그러니까 일일드라마의 '막장 스토리'는 대중이 원하기 때문에 굳어진 '장르' 같은 겁니다.
저희 어머니는 이것들을 보면서 매일 불평하시고 재미없다고 하십니다. 중요한 건 '매일 본다'는 거죠.
제가 재미있는 걸 보여드리겠다고,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한 편을 골라 보여드리면 재미없다고 하십니다. 이야기 구조가 너무 복잡하고 캐릭터가 많이 나오면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재미가 없는 겁니다.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소설을 읽고, 많은 드라마나 영화를 본 사람들은 복잡한 구조의 이야기들을 선호하죠. 흥미로운 반전을 기대하고, 새로운 형식에 열광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중은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에 그닥 흥미가 없습니다. 새로운 게 뭔지도 모르죠, 사실. 그냥 이해하기 쉽고, 그게 재미있길 바랍니다.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것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뻔한 이야기', '뻔한 영화'를 찾는 겁니다.
▣ 장르 영화는 경제적이다
'장르'를 따라가는 영화를 만들면, '감독'은 성공할 확률이 높아 좋고, '장르 영화'를 예매하면 '관객'은 '돈이 아깝지 않을' 확률이 높아 좋습니다. 그런데 장르 영화를 만들면 좋아할 또 다른 사람(?)이 있는데요, 바로 제작자입니다. 장르 영화를 만들면 돈이 절약됩니다. 세트장도 절약될 수 있고, 마케팅 비용도 절약될 수 있습니다.
80년대인가에는 감옥으로 '서대문형무소'가 나왔어요. 그때는 세트장을 만들만한 자본이 부족했기 때문에 유치장이든 감옥이든 다소 부실한 공간을 보여주곤 했죠. 그런데 이제는 감옥 세트장이 있으니 '프리즌브레이크' 같은 류의 영화나 드라마가 반복적으로 만들어질 수가 있는 겁니다.
사극도 마찬가지죠. 옛날에는 '민속촌'에서 거의 만들었지만 지금은 전국 곳곳에 사극 세트장이 있어서 더욱 사실적인 배경에서 장면을 연출합니다. 조선 시대 배경의 장르 소설이 발달하고, 사극 세트장이 늘면서 사극 제작도 더 다양하게 이뤄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미 성공한 영화의 장르를 그대로 따라가면, 어떤 대중이 그 영화를 선호하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마케팅 방향을 잡기도 쉽습니다. 그리고 이미 마케팅을 한 내력도 있으니, 이 정보를 참고할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만들 때도 경제적입니다. 장르적 특징을 최대한 반영해서 줄거리, 인물, 배경 등을 설정하면 됩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조차 '산업적 방식'으로 가능해지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장르 형식에만 갇히게 되면, 기본적인 장사는 되겠지만 좋은 평가를 얻긴 어렵겠죠.
헐리웃 영화에 '공장에서 만든 것 같은 영화'라는 오명이 따라다니는 것도 이런 산업의 관점에서만 제작된 영화들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겁니다.
대중은 쉬운 이야기를 선호하지만 그게 재미가 없으면 분노합니다.
그럼 그 '재미'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기본적으로는 '다름'에서 만들어집니다.
영화가 갖고 있는 '산업적 성격'을 절대로 무시해선 안 되지만, 수없이 많은 영화들 또는 수없이 많은 시나리오들 중 '내 것'을 다른 사람들 눈에 띄게 하려면 '장르'가 분명하여 누구든 알기 쉬워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고정적 형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재미'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름'은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일단은 '더럽게 재미없음'을 탈피해야 할텐데요, 그러려면 많은 영화, 소설 등의 이야기 기반 콘텐츠를 보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런 정보가 전무하다면, 다른 사람들 눈에는 너무 진부한 이야기가 나한테만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거든요. 어떤 이야기가 새로운 이야기인가, 어떤 방식이 새로운 방식인가를 알려면 일단은 많이 보는 게 중요하겠고요. 그 중에서도 성공한 영화들을 기본적으로 봐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 영화들의 성공 요인을 파악하고, 내가 쓸 이야기에 적용해 볼 수 있다면 조금은 덜 뻔한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저는 각 장르의 특징을 정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영화의 성공 요인 등을 알아볼 예정입니다.
글을 빨리 써 올리지 못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올릴 글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진심'이 담긴 '글'로 세상과 더 많이 소통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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