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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글/에세이

[2013.04.22] 다카포

by 칼랭2 2022.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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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포란 말이 있다. 데브의 앨범에 수록된 노래의 제목이기도 한데, 다카포란 것은, 악곡을 처음부터 다시 연주하라는 뜻의 음악기호다. 그리고, 내 올해 삶의 계획이기도 하다.

 원래는, 읽었던 책들의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서, 뭔가, 내가 허트루 보낸 시간들만큼이나 오로지 기억만으로 '읽은 것'이 되어버린 책들을 허트루 소비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년 연말부터 생각해 왔던 것이었다.

 내가 책을 가장 많이 읽었던 때가, 그러니까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이었다. 그때, 문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그 해 초, 예대에 합격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휴학계를 냈고, 1년 동안 100권의 책을 읽기로 다짐하고, 정말 열심히 책을 읽었다. 100권까지는 못 읽었지만, 80권 정도는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거기에는 2002 월드컵이 한 몫을 했다. 가게에 손님이 없어서, 책을 읽을 시간이 아주 많았던 것이다.

 사실 권수로 따지면, 예대 다닐 때 더 많이 읽었을 것 같지만 그때는 도서대출순위에 연연해서, 늘상 시집만 빌리던 때라 2002년과 비교해선 안 될 것 같고, 여하간 그때부터 약 3~4년 동안 참 다양한 책을 읽었는데, 인문서 등은 그래도 내용이 얼추 기억이 나고 또,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인생관이나 세계관 형성에 기여하는 부분이기에 문장이나 내용이 완전히 기억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인데, 소설의 내용이나 인물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아서, 그때 읽었던 소설들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월요일에 갑자기 김연수의 '사랑이라니, 선영아'가 몹시 읽고 싶어졌고, 그래서 회사 근처 반디앤루니스로 무작정 찾아갔지만, 뭐 예상대로 책은 없었다. 그냥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주문하자,고 마음을 다독이고 강남역으로 갔는데, 그날 고뿔에 걸린 상태였지만, 회사에서 일이 많아서 다소 늦게 퇴근했고, 늦은 김에, 버스를 타고 집에 가자고 생각하고 강남을 간 것이었다. 강남역에 내리자, 갑자기 그곳에 '교보문고'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고, 나는 또 무작정, 출구를 찾아 헤맸다. 길치에 중요하지 않은 것은 쉽게 잊어버리는 성격(?)인지라, 교보문고 방향의 출구를 찾지 못해 10여분을 헤맸던 것 같고,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그러니까 화장실과 붙어 있는 낯익은 구조를 보고 냉큼 계단을 올라갔고, 10여년 전처럼 여전히 좌판이 벌여진, 과거의 6번 출구(지금은... 10번이었나 12번인가. ㅜ.ㅜ)로 나갔다.

풍문대로 내가 잠시 몸담기도 했던 뉴욕제과는 화려한 옷가게로 바뀌어 있었고, 길에는 둥그런 화단도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그 역에서 교보문고 강남점까지의 거리가 꽤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마치 가파른 길을 달려내려오던 때의 느낌처럼, 나는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고 무작정 '사랑이라니, 선영아'의 재고가 1권 남아 있는 교보문고 강남점으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도, 그 책은 없었다. 그 책이 아니라면 배수아의 '철수'라도 사야겠다, 생각하고 배수아의 책을 샀고, 그리고 아쉬운 김에 김연수의 '7번 국도'를 샀다. 모두 10년 전에 읽었던 책들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책을 주문했다. 배수아의 '일요일 스키야키식당'을 함께 주문했고, 또 미뤄두었던 CD들도 주문했다.

 그렇게 어렵게 내 손으로 들어온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배수아의 '철수'만큼 재미있었고, 또, 닭이 먹고 싶어졌고, 그 허기짐이 슬프기도 했다.

 또, 나는 일주일 내내, 옛날 노래만 들었다. 본디 옛날에 듣던 노래도 자주 찾아 듣는 편이기는 한데, 대개 윤종신-유리상자-화이트(푸른하늘)-유재하-김광석의 루트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시기?! 그때, 물론 윤종신을 열렬하게 애정하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이승환의 음악에 심취해 있던 시기였기에, 이승환의 1,2집과 이오공감 tape을 귀가 닳도록 들었고, '덩크슛'이란 노래를 엄청 싫어했지만,  (나는 김광진의 작품이고, 한동준이 부른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라는 발라드는 무척 좋아했는데 어쩐지 김광진의 '발랄한 노래'는 참 싫어했었다.)

다른 노래들은 모두 좋아했던 3집(덩크슛 때문에 이 앨범은 사지 않았는데, 음악은 친구가 '불법복제'를 해줘서 들을 수 있었다... 참, 이상한 객기였다는 생각도 들고)의 노래들도, 역시 덩크슛은 빼고, 참 열심히 들었는데 (그런데 야발라바히기야...는 어찌 그리 잘 기억이 나는지... 그만큼 라디오에서 많이 흘러나온 노래란 뜻) 일주일 동안, 역시 귀가 닳도록 이승환의 1,2,3, 이오공감 앨범을 멜론으로 들으면서 새삼, 내가 이승환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일요일일요일밤'에 초대손님으로 나올 정도로 유명인이어서 안 그런척 했을 뿐. ㅋ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고 하는 4집부터는 아예 앨범도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덕분에 '천일동안' 이후의 노래는 잘 모른다. :) but, 괜히 이승환 콘서트에 가 보는 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는 말씀. (아....   스탠딩... ㅜ.ㅜ) 분~명, 많은 노래를 따라부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는 말씀이다. 

 윤종신 2집은, 내가 참 싫어하는 앨범이었는데도 그땐 좀 미쳐 있을 때라, 엄청나게 들었고, 그래서 테이프가 늘어났고, 냉동실에 엄청 자주 들어갔다 나왔다 했던 앨범이기도 했는데, 문득 그때 들었던 노래들을 떠올리면,,, 등교길, 새벽 6시의 겨울 바람이 떠오르기도 하고, 제국주의의 흔적을 느끼게 하는 교정과 벚꽃, 그리고 남자아이와 펜팔을 했다고 훈계를 하던 수학 선생님도 떠오른다. (그 잔소리를 제자에 대한 사랑이라 오해하고, 졸업 후 스승의 날에 찾아갔을 때, 야멸차게 무시하고 집으로 돌아가셨던 그 선생님은, 지금도 누구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있을까?)

그리고 또, '노태우 살인자'라고 빨간 글씨로 적혀 있었던 공장의 벽과 매캐한 연기도 떠오른다.

 무언가,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이 어느 정도는 있었던 해마다 환경콘서트가 열리고, 뭔가 바른 것을 향한 움직임들이 보였던 위아더월드했던 시절을 꿈꾸는 것은, 지금 이 세계가, 결코 어떤 식으로든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때문인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만 추억을 마시고, 또 취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추억에 힘을 실어주고, 그가 무언가를 해주기를, 과거의 영광을 그저, 시간이 지났기에 더욱 아름다워보일 뿐인 그때를 현실화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인지.... 

 

다카포.

그래봐야, 똑같은 오늘이 올 뿐이지만, 문득... 

 

응...  프리퀀시라는 영화였나,

 

내 과거와 소통할 수 있다면 그때의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또 다른 오늘이, 있었을 수도 있을까, 하고

조금은 서럽기도 했던, 일주일이었다.

 

 

ps.

사랑은 감기란 말이 맞다.

감기 바이러스는 수천종이 넘는다고 하는데,

정확하게 맞는 항체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 아닌가.

정확하게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노래에라도, 소설에라도, 시에라도, 혹은 닮은 사람에게라도

기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행히, 나의 감기는 금요일부로 막을 내렸다.

참, 오래 간 감기였던 것은

역시, 마음이 허술해진 탓.

 

마음을 멈춰 줄 누굴 찾고 싶은 것만큼이나,

내 마음은 여전히, 흔들리고 싶은지도 모른다.

 

201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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