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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글/에세이

[2014.08.10] 세 번 인사하는 사람

by 칼랭2 2022.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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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의 사랑이 모든 사회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것을 쉼터에서 지내면서 거의 매일 깨닫는다.

우리 쉼터에서 지내는 분들은 하나같이 애정결핍이라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고, 드러나는 징후는 제각각이다. 공동체 회의 중에 불쑥불쑥 맥락과 상관없는 말을 꺼내, 주목을 끈다던가, 집단상담 시간에 자기만의 얘기를 계속해서 늘어놓는다던가 하는 일은 오히려 작은 문제다. 더러는 자해를 하기도 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니 말이다.

예순에 가까운 분이 계신데, 이 분은 3살 때 버려져 사설 고아원에서 자랐다. 고아원을 운영하던 노부부는 돈을 벌어 오라며 열 몇 살밖에 되지 않은 여자 애를 식모살이를 보냈다. 힘들어 도망쳤고, 서울로 올라와 일자리를 구하려다 어찌어찌 들어가게 된 곳이 청량리 588이었다. 그녀가 살며 만난 모든 이들이 그녀를 이용하려고만 들었을 뿐, 그녀를 아껴주거나 보호해 주려 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말하자면, 일평생 단 한 번도 사랑이란 걸 받아보지 못한 채 자란 분이었다. 

당연히 기본적인 생활훈련도 안 되어 있어서 선생님들과도 많은 마찰이 있었다. 선생님들은 그녀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녀는 바뀌는 방법을 몰랐다. 서로 그렇게 어긋나는 줄 알면서도 그녀는 관심 받고 싶어 했다. 관심이 너무 받고 싶어서, 하루에도 수십 번을 지하실로 내려갔다. 요령을 갖춰야 하는 일은 못 하시기 때문에 이 분에게 재활용품과 쓰레기 버리는 일을 시켰는데, 수거함은 지하층에 있었다. 재활용품과 쓰레기를 버리려면 지하층까지 내려가야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재활용품과 쓰레기가 가득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미적미적 갖다 버렸을 것이었다. 그런데 이 분은 재활용품이 바구니에 담기면 그 즉시 가지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선생님, 저 재활용품 버리러 지하실 좀 갔다 올게요."

그녀는 늘, 내려갈 때마다 이 말을 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대답을 들을 때까지 이 말을 했고, 대답을 해도 세 번 이상 이 말을 할 때도 있었다. 너무 반복을 하면, '한 번만 말하시라'고 핀잔을 주지만 선생님들도 그녀가 왜 그 말을 반복하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녀는 산책을 나갈 때도, 재활용품을 버리러 갈 때도, 인사를 했다. 산책은 인사를 세 번이나 하고도 안 나갈 때도 있었다. 그녀는 마치 인사를 하기 위해 산책을 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슬픔은 덜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늘어난 살거죽처럼 펑퍼짐해진 마음의 공간은 좀처럼 채울 수 없으리라는 것을. 

상처를 받으면 받을수록 사랑을 담는 용기의 크기는 점점 커진다. 받을 수 있는 사랑의 양보다 받아야 하는 사랑의 양이 너무 클 때, 그 공백을 견디지 못할 때 공허와 슬픔과 좌절은 찾아온다. 그들의 그릇은 너무 커져 버려서 우리 모두의 사랑으로도 늘 턱없이 부족한데, 나는 그 사랑마저도 나눠주기 싫어서 인색해질 때가 있었다. 그들뿐 아니라 우리도, 우리의 마음도 늘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채워나갈 용기가 없어, 차마 꺼내주지 못한 마음이 산더미였다. 나의 좌절감은 어쩌면 그 모든 곳으로부터 쏟아져 내리는지 모른다. 고갈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 채워나갈 용기가 없다는 것. 나눠 줄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데도 쌓아두기만 하는 데서 오는 죄책감.

 이들과 살아가는 일 때문인지 이 詩는 늘 내 마음을 붙잡는다. 이병률의 시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빈집으로 들어갈 구실은 없고 바람은 차가워 여관에 갔다

마음이 자욱해서 셔츠를 빨아 널었더니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눈물 같은 밤

그 늦은 시각 여관방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옆방에 머물고 있는 사내라고 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왜 그러느냐 물었다

말이 하고 싶어서요 뭘 기다리느라 혼자 열흘 남짓 여관방에서 지내고 있는데 쓸쓸하고 적적하다고

 

뭐가 뭔지 몰라서도 아니고 두려워서도 아닌데 사내의 방에 가지 않았다

간다 하고 가지 않았다

 

뭔가를 기다리기는 마찬가지,

그가 뭘 기다리는지 들어버려서 내가 무얼 기다리는지 말해버리면

바깥에서 뒹굴고 있을 나뭇잎들조차 구실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셔츠 끝단을 타고 떨어지는 물소리를 다 듣고 겨우 누웠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

온다 하고 오지 않는 것들이 보낸 환청이라 생각하였지만

끌어다 덮는 이불 속이 춥고 복잡하였다

 

(이병률 시집, '바람의 사생활' 수록)

 

언제나, 누구에게든, 말 걸고 싶어서 그녀는 불현듯 눈물을 쏟는 것이리라. 그리고 우리도 아니, 나도 늘 누군가와의 대화가 그립기는 마찬가지다.

삶은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허공에나 묻는, 그런 밤이다.

 2022.05.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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