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46분 열차는 흔한 표현으로 콩나물 시루 같다. 자리를 잡고 서는 것조차 전쟁일 정도로 많은 사람이 열차에 실린다. 십 분 뒤에 도착하는 열차는 대낮에 타는 3 호선 열차만큼이나 한산하다. 외려 사람이 많아 더 앉고 싶어질 법한 열차 안에서는 으례 앉을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데 사람 없는 열차에서는 좀처럼 욕망을 억누를 수가 없다. 희망에 속박된다. 가능성이 많다눈 생각에 주위를 더 둘러보게 되며 사람들의 거동을 살피게 된다. 그리고 꼭 피곤한 것은 아닌데도 그런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반드시 앉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애초에 자리를 잘못 잡아서 동네 사람이라도 앞에 앉혀두게 되고 새로 탄 사람들이 새로 생기는 자리에 덥썩덥썩 앉게 되면 불만과 고통은 평범한 실망의 정도를 넘어서고. 도대체 나는 왜 이 모양이며 이렇게 지지리도 운이 없는 걸까, 나란 인간은 확 죽어버리는 게 세상에 이롭지 않겠는가, 뭐 이런 비생산적이고 몰사회적인 생각을 늘어놓으며 나름의 방법으로 고통을 달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나는 어찌되었건 앉게 된다. 절반을 서서 가다 앉으면 그나마 본전빵이라고 생각하고 이십분 정도를 남겨 두고 앉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ㅠ십분을 남겨 놓고 앉으면 짜증이 나서 그냥 서서 갈까 싶은 마음도 든다. 누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고 다만 운에 따라서 그렇게 결정이 되는 것뿐인데도 거기에 가치를 두고 내 삶을 평가한다
그렇게 하루에도 몇번씩, 나는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따지고 보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피로나 다리의 통증이 아니다. 옆에 선 사람보다 먼저 앉고 싶은 간사한 욕심이다. 내 욕심이 만족되어야만 행복하다거나 행운이라고 말하는 간사함이 내 근육을 쥐어짜며, 내 어깨를 짓누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이 간사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정말, 사람이 아니게 되어야하기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고 집을 나서는 즉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적어도, 아무도 나를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공간에서는 간사해질 필요가 없으며 주위에 아무도 없기때문에 충분히 관대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나는 언제나, 어떤식으로는 위장해야 하며 따라서 어떤식으로든 상처를 받고 결과적으로 나 자신에게 실망하며
자존감을 부수어버린다.
나를 자각하면 할수록 나는 소멸된다.
그래선가 나는 사람들이, 우리 나라 사람들이 유독 이 좁은 나라에서 그토록 많은 차를 사는 이유가 남에게 진짜 자신을 들키고 싶지 않고 어찌되었건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일 거란 생각을 한다.
전쟁통에선 어쩔 수 없이 본성이 드러나며 그 본성은 자주, 자신의 자존감을 훼손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숨기 위해서 개인용 자동차 안에 자신을 숨기고 사는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한다.
201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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