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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읽기(책)/소설 읽기

[단편집] 말하자면 좋은 사람(정이현)

by 칼랭2 2023.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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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단편집 <말하자면 좋은 사람> 표지

 

 

SNS, 자동차, PC통신 등 현대사회를 역동시키는 도구들을 소재로 빚어진 소설집이다.

 

정이현의 소설은 <낭만적 사랑과 사회>라는 단편집과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장편소설을 읽은 게 전부였다. 어쩌면 몇 번, 문예지 같은 데서 읽은 단편소설 몇 편이 더 있을지 모르겠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라는 단편집에 담긴 풍자성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칙릿스러운 소설풍이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달콤한 나의 도시> 이후로는 선뜻 손이 가지 않던 소설가였다. 아마도 이 책도 내 돈으로 사야 했다면 안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정이현의 담백하고 가독성 높은 문장은 좋아하는 편이어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냉큼 빌려다가 읽었다. 

 

솔직히 초반엔, 그냥 그랬다.

 

책 읽기의 호흡이 짧아진 요즘 같은 시대에 읽기 좋은 책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런 만큼 내용의 깊이도 얕아진 느낌이었다. 너무 더운 여름에, 발목까지밖에 차지 않는, 게다가 미지근하기까지 한 개천에 서 있는 느낌. 역시 좀 건조하고, 이성적인(?) 문체가 느껴져서 촉촉해지고 싶었던 내 마음은 연신 그의 문장을 거부했고, 몇 번씩 덮어 놓기 일쑤였다. 그러나 원고지 4~50매 분량밖에 되지 않을 정도의 짧은 소설의 모음집이었기 때문에 지구력이 계속해서 떨어졌음에도, 한 시간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이 책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우리 '좋은 사람들'은 지금, 이 문명의 이기들 때문에 무척이나 고독하다"고,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그것을 그녀는 호들갑스럽지 않게, 그녀만의 방식으로 담담하게 말한 것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늦게' 이해하는 나는, 또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뒤늦게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감했다. 서로를 끌어 당길 수많은 장치들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지만, 그것들은 우리를 연결하지 못한다. 세계는 역동적인 것 같으면서도 멈춰 있는 것 같다. 

 

수많은, 세계의 장치들 속에 고독이 고여있기 때문일까?


덧붙이는 글:

 

 

1. 과제

대학 입학하고 1학년 1학기 첫 소설창작실습 시간에 주어진 과제는 (원고지 기준) 40매 단편소설 쓰기였다(60매였나?). 보통 단편소설은 원고지 80매~100매 수준(일간지 신춘문예에서 요구하는 소설 분량은 80매 안팎)이지만 초심자들은 그 정도의 호흡으로는 소설을 써내지 못하기 때문에 주어진 과제였다.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글의 길이를 늘려가면서 글쓰기의 호흡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커리큘럼이었던 것.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대학 첫 학기에 썼던 소설이 떠올랐다.

 

알고 보면, 4~50매 분량의 엽편소설이, 800매 분량의 장편소설보다 쓰기 어려운 것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때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별로 이야기해주시지 않으셨다. 소설이란 것을 스스로 깨달아가야 한다는 것만이라도 알려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기도 한 무척 아쉬운, 아쉽기만 했던 시간들.(돌이켜 보면, 하면 안 되는 것만 연신 알려주셨는데, 그건 글쓰기에는 정말로 독약이었다. 자유로운 상상을 방해한다. 소설 창작 교육에 있어서 만큼은 정말 너무 아쉬웠던 그 학교.)

 

문득 소설집의 마지막 구절이 떠오른다.

 

언젠가 이런 문장을 읽은 적이 있어.
"자신을 완벽하게 고백하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어떤 표현도 불가능하다.'
비루한 고백을 들어줘서 고마워. 오랫동안 옆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마지막으로 어떤 주저도 없이 말할게.
행복해라, 꼭.
                        - 정이현 단편소설  <안녕이란 말 대신> 中에서

 

2. 동창 밴드에 가입했다

 

밴드는 일 때문에 가입한 곳 하나밖에 없었는데 <이미자를 만나러 가다>라는 소설에 '밴드'가 소재로 등장하는 것을 보고, 갑자기 동창들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중고등학교 밴드는 황폐하지만(여자 학교들이라 그런 건지) 초등학교 밴드는 그럭저럭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를 알아보는 친구도 있었고, 내가 아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러나 왠지 모를 이질감:

나는 내가 느끼기에도 초등학교 때는 정말 존재감이 없었는데, 기억이란 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기억하고 있다니.

소셜미디어들

3. 비밀

"알고 싶어 너의 비밀!"

한병철 박사의 '투명사회'를 읽고 있는데, '페이스북'에 가짜 인생을 전시하는 아내의 이야기를 다룬 <비밀의 화원> 같은 소설을 보면, 사회가 투명성을 요구하면 할수록 가짜와 부재가 판을 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한병철 박사는 '투명사회'라는 책에서 '비밀'의 가치를 몇 번이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또, '알고 싶어 너의 비밀(전기뱀장어 '송곳니 노랫말)'이라든지, '숨기고 싶은 비밀 그 어떤 어둠도 모두 달란 말이야(9와숫자들 '몽땅' 노랫말)'라고 하면서, 다 알아야 한다고 부추긴다. 곳곳에 CCTV가 안전을 명목을 세워지고, 스마트폰으로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기록한다.

 

모든 것이 까발려져야 하는 세상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맞는데,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신뢰'보다는 '정보의 진실성'만이 요구되는 현실이 비극인 것도 맞는데, 문득 "연인 간에는 어떤가?"를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각자의 비밀을 하나씩은 갖고 있는 게 맞는지. 비밀은 정말 인간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일까, 아닐까. 등등.

 

2014.7.21 09:37 쓰고 2022.05.29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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