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텍스트 읽기(책)/소설 읽기

[장편소설] 『살인자의 건강법』아멜리 노통

by 칼랭2 2023. 4. 3.
반응형

 내가 읽은 첫 번째 노통의 소설은 『사랑의 파괴』였다. 그 후로 노통의 소설들을 섭렵하고 있는데 이 책 역시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살인자의 건강법』은 노통이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이었다. 지금 그녀는 문단과 대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명실상부한 인기 작가이지만 처음부터 순조롭게 문단에 들어왔던 것은 아니었다. 이 소설을 받은 첫 출판사에서는 ‘장난’인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랬다. 그녀는 수다스럽게 얘기를 풀어놓는다. 독자를 복잡한 서사의 세계로 인도하기 보다는 수다스러운 철학의 세계, 은유의 세계, 풍자의 세계로 불러들인다.

 

이 소설에는 문단에 대한 풍자가 섞여 있다.

비만한 소설가의 말장난에 '제대로' 응수하는 촌철살인의 여기자.

그녀는 노통이었고, 노통은 소설 안에서 여기자의 제스츄어를 취하고 있었다.

'로베르 인명사전'에 까메오로 출연했던 것처럼!

 

비만한 소설가 프레텍스타 타슈는 여기자의 손에 살해당하길 원한다. 죽을 날만 받아 놓은 대문호가 ‘살해당하다’니! 이처럼 특별한 사건이 어디에 있을까. 그는 특별한 죽음을 원했던 것이다. 타슈가 기다리는 것은 ‘자연적인 죽음’이지만, 그는 그런 평범한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 ‘자연적인 죽음’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살해해달라고 애원한다. 여기자는 갈등한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살인자가 된다는 사실보다, 타슈의 작품이 그 본질과 관계없이 다른 사건(살해당했다는 개별성, 상징적인 죽음)으로 인해 특별한 권위를 부여받으리란 전망 때문이다.

타슈가 곧 죽으리라는 연락을 받고 모여든 기자들 대부분은 타슈의 작품을 읽지 않고 오직 명성만을 생각하고 온 작자들이다. 타슈와 유일하게 대적한 말상대인 여기자만이 타슈의 전작을 읽었을 뿐이다.

타슈라는 대상을 의미화한 것은 대상 안에 들어 있는 본질적 요소라기보다는 그 밖의 요소, 일테면 아우라라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었다. 타슈는 그것을 간파하는 작가였으며, 때문에 여기자에게 자신의 소설이, 아니 타슈라는 자신이 더 특별한 아우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살해해주기를 부탁하는 것이다.

이것은 문학에 대한, 예술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읽힌다.

 

최근에 함기석의 시집을 읽었는데 시들이 대부분 그런 얘기였다. 놀이터에서 '언어'를 갖고 노는 거다. 놀이터는 가공의 공간일 수 있다. '언어'를 갖고 논다는 게 중요하다.

노통도 '언어'를 갖고 노는 작가다.

그녀는 분명, 튀는 여자고,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튀는 여자가 될 수 없었다면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자살해버렸을지도 모른다.

 

문학에 대해, 소설에 대해 메타적으로 씌어진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소설이란 결코 인간을 교화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가장 합법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방법, 그것은 예술을 하는 것, 특히나 문학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노통은, 이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쾌락을 위해 소설을 쓴다고 말한다. (물론 다른 책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즐겁지 못한 인간이 소설을 쓰는 것은 패륜이라고까지 말한다. 소설을 쓰면서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대단한 철학을 과시할 수 있다고 믿는 '살찐 작가'들을 비웃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선가 내 생각도 좀 바뀌었다. 노통의 소설들을 몇 주 동안 계속해서 읽으면서 나로부터 자유로워져야겠고, 소설 자체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겠다고…….

 

노통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 변화가 즐겁다.

 

 

2004.11.27 씀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