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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4] 부고 슬프지 않으려고, 당첨도 되지 않은 복권의 당첨금을 상상하며 마당 넓고 예쁘게 지은 전원주택들을 구경했다. 즐길 것도 없고, 즐길 마음도 들지 않아서,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웠다가 ‘벌써 자느냐’는 엄마 말씀에 장난을 치며 앉아 있다가, 일도 할 마음이 들지 않아서 모바일 게임이나 몇 번 하다가 그러다가 망상에나 젖을 념으로 예쁜 집들을 구경한 것이다. 정말, 내가 살 수 있을까 싶게 넓고 아름다운 집들 자동차 두 대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이 완비되어 있고 시스템 에어컨이 방마다 설치되어 있는 3층집들. 마당이 너무 좁다는 둥, 방이 너무 좁다는 둥, 창문이 너무 좁다는 둥, 전망이 별로 좋지 않다는 둥, 이런 저런 핑계로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창을 닫으면서는 오늘 누가 죽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 2022. 5. 19.
[2017.09.10] 아파트의 죽음 어제였다. 어디선가 플라스틱 타는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종종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나기도 하니까, 어디서 쓰레기를 태우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는 찰나. 긴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사이렌 소리도 종종 들리는 거니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타는 냄새는 더 짙어졌다. 다시 길고 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사이렌 소리는 가까운 데서 들리고 있었다. 베란다 창을 내다 보니 내가 살던 아파트 근처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엄마 은행 가는 길에 동행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방차가 늘어 서 있는 길을 지나왔다. 불이 난 곳은 남창아파트 2층이었다. 주인은 집에 없었는데, 집은 모두 탔다. 불을 끄려다 그랬는지 불이 타오르다 그랬는지 창문이 다 깨져 있어서 불에 탄 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을음은 위층.. 2022. 5. 19.
[2018.03.07] 추억의 뉴욕제과 & ABC상사 ABC 상사가 '고작 빵집인' 뉴욕제과를 갖고 있던 회사였다고, 무시를 하는데 보이는 게 다는 아닐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ABC가 '뉴욕제과 강남점'만 남기고 다른 동네 지점은 버리고 인수를 했다는 점에서, 사실 '빵집을 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어떤 '거점'으로 인수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뉴욕제과는 매장만 규모가 100평 정도였을 거고, 지하에 빵공장이 있었다. 2층인가 3층인가에 직원휴게소가 있었는데 거긴 별로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솔직히 '사무실'이라는 공간은 기억에 없는데 '이사', '상무'라는 직책의 관리인이 있어서 가끔 왔다갔다 했다. 직원의 절반은 실업계 고등학생으로 '실습' 목적으로 와 있는 친구들이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인건비는 거의 들이지 않고, 빵집을 운영했던 셈... 2022. 5. 16.
[에세이] 강준만,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국가와 권력은 어떻게 성을 거래해왔는가' 충동대출은 했지만, 역시나 단시간에 읽히는 강준만의 책이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실망'! "어쩌면 강준만은 원래부터 '중립'을 무기로 회색적 입장을 고수하던 사람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심어준 책.책은 일제시대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신문기사', '서적 발췌문' 등을 인용해 가며 한국 매매춘의 역사를 논하며, 성매매가 끊이지 않는 원인을 찾기 위해 용을 쓰지만 결국은 핵심을 집어내지 못하고 "그러니까 박정희가 나빠"식으로 꼬리를 내리는 느낌이었다.적어도 한국의 매매춘, 아니 성매매를 논하겠다고 한다면 최소한의 취재는 했어야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몇 년 전까지의 성매매 현실이라고는 해도 현실과 많이 동떨어진 느낌이었고 '그럴만 하니까 여자들이 성매매를 하.. 2022. 5. 13.
[에세이] 임박한 파국 - 슬라보예 지젝(꾸리에 출판사, 2012) 김지하가 죽었다. 신문들은 저항 시인이 죽었다고 떠들어댔다. 그의 변절로 '저항 시인'이란 글자가 퇴색되었음에도, 신문들은 어리석게 떠들어댔다. 오늘 나는 이 글을 찾았다. 지젝의 책을 읽은 후, 감상을 적은 것이었는데 거기 김지하에 대한 글이 있었다. 글은 2013년의 것이었다. 2012년, 김지하는 박근혜를 지지했다. 그의 변절은 너무 오래되고 낡은 것이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탄식했다. 김지하의 죽음은 잠깐의 뉴스로 지나갔다. 자신의 문장을 배신한 자의 말로. 문득 생각한다. 나의 죽음은 어떤 죽음이 될까. 2013년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옮겨 적는다. 김지하가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선언을 했을 때, 나는 김지하가 망령이 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은 내가 그저 김지하를 몰라 그랬던 거지, 김지.. 2022.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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