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였다.
어디선가 플라스틱 타는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종종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나기도 하니까, 어디서 쓰레기를 태우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는 찰나. 긴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사이렌 소리도 종종 들리는 거니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타는 냄새는 더 짙어졌다. 다시 길고 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사이렌 소리는 가까운 데서 들리고 있었다. 베란다 창을 내다 보니 내가 살던 아파트 근처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엄마 은행 가는 길에 동행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방차가 늘어 서 있는 길을 지나왔다. 불이 난 곳은 남창아파트 2층이었다. 주인은 집에 없었는데, 집은 모두 탔다. 불을 끄려다 그랬는지 불이 타오르다 그랬는지 창문이 다 깨져 있어서 불에 탄 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을음은 위층에까지 이어져 있었다. 엄마는 안타까워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놀라고 슬퍼하게 될 집 주인의 마음을 동정했다.
엄마와 나는 화재의 원인에 대해 불필요한 설왕설래를 계속했다. 나는 전기장판을 잘못 펴 놓았는지 모른다고 했고, 엄마는 가스렌지를 켜 놓고 간 것이라고 단정했다. 전기합선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원인이 뭐가 되었든 다 타버린 집 안에 들어가 망연자실해질 집의 주인에게 잘못이 있고, 없고를 따져 묻는 일은 그저 가혹할 뿐일 듯도 했다. 아파트에서 불이 난 것이므로, 다른 집에 피해를 준 일이 그들을 더 곤란하게 할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왜인지, ‘자연발화’가 떠올랐다. 외부의 어떤 불꽃이 없이 스스로 불을 만들어내 급기야 전소시키기도 한다는 미스터리한 현상 말이다. 사람처럼 집도 자살을 할 때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낡고 오래된 그 아파트는 재개발 단지에 속해 있는 아파트였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도 남창 아파트와 붙어 있었다. 어제 불에 탄 그 집은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어김없이 지나오는 길에 있었다.
앞으로 사라지게 될 집들 중 하나였다.
그 집은, 기억을 뿜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기록되기 위해, 주인을 속상하게 하는 줄도 모르고 까맣게 자신을 태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기록해 둔다.
기록이 언젠가 위로가 되길 바라며.
2017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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