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글/에세이

[2018.03.07] 추억의 뉴욕제과 & ABC상사

by 칼랭2 2022. 5. 16.
반응형

ABC 상사가 '고작 빵집인' 뉴욕제과를 갖고 있던 회사였다고, 무시를 하는데 보이는 게 다는 아닐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ABC가 '뉴욕제과 강남점'만 남기고 다른 동네 지점은 버리고 인수를 했다는 점에서, 사실 '빵집을 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어떤 '거점'으로 인수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뉴욕제과는 매장만 규모가 100평 정도였을 거고, 지하에 빵공장이 있었다. 2층인가 3층인가에 직원휴게소가 있었는데 거긴 별로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솔직히 '사무실'이라는 공간은 기억에 없는데 '이사', '상무'라는 직책의 관리인이 있어서 가끔 왔다갔다 했다. 직원의 절반은 실업계 고등학생으로 '실습' 목적으로 와 있는 친구들이었다. 말하자면 그들은 인건비는 거의 들이지 않고, 빵집을 운영했던 셈. 그러다 보니 애들이 일을 거의 안해서 싫은 소릴 못하는 나는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당시 뉴욕제과는 강남 복부인들의 터전이었고, 연예인들이 팬미팅을 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강남 복부인들은 1,000원이 채 되지 않는 단팥빵 따위를 구입해 놓고, 앉아서 '업무'를 봤다. 우리는 상사의 '오더'에 따라, 그들을 쫓아내야 했다.

 

"음료를 주문하지 않으시면 앉아 계실 수 없어요."

이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이, 2,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것은 음료 코너에서 일하는 내게 아주 번거로운 일이었다. 커피 한 잔이 나가는 데는 커피잔과 잔 받침, 티스푼이 쓰였다. 그 모든 것을 손수 설거지해야 했다.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음료 코너 옆에 제빵 작업대가 있었는데, 새 빵이 나왔을 때 포장을 하는 일도 내 업무였다.  사람을 쫓아내기 위해 주문을 받아야 하는 고충과, 계속되는 설거지, 빵 포장, 게다가 여름엔 팥빙수까지.

일이란 건 원래 하는 사람만 하는 거니까. 모두 구석에 앉아 딴짓을 하는 사이, 나는 미련하게 일을 계속 했고, 번아웃과 체력 고갈로 월급이 막 오르려는 시점에서 1년을 못 채우고 그만뒀다. 물론, 오래 할 생각으로 잡은 일은 아니었으니까, 힘이 들면 그만두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그때 깨달은 것은 자신에게 관대할 줄 알아야 오래 버틴다는 것. 요령을 피운 사람들은 여전히 거기서 일을 하고 있었다. 10년쯤 뒤였나, 그 앞을 지나갈 때에도 낯익은 사람이 보였다.

 여하간에, 빵에 대해 전혀 모르는 분들이 빵집을 인수한 걸 보고,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처럼 요즘 뉴스에 등장하는 얘길 보면, 'ABC 상사 자체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을 ABC가 사면서 뉴욕제과까지 산 걸로 알고 있지만서도.)

 

2018/03/07 23:07

728x90
반응형

'마음글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04.22] 다카포  (0) 2022.06.05
[2014.04.02] 그래서 사람들은 차를 산다  (0) 2022.06.05
[2010.04.02] 사치  (0) 2022.05.19
[2018.07.24] 부고  (0) 2022.05.19
[2017.09.10] 아파트의 죽음  (0) 2022.05.1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