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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글/에세이

[2018.07.24] 부고

by 칼랭2 2022.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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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 않으려고, 당첨도 되지 않은 복권의 당첨금을 상상하며 마당 넓고 예쁘게 지은 전원주택들을 구경했다. 즐길 것도 없고, 즐길 마음도 들지 않아서,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웠다가 ‘벌써 자느냐’는 엄마 말씀에 장난을 치며 앉아 있다가, 일도 할 마음이 들지 않아서 모바일 게임이나 몇 번 하다가 그러다가 망상에나 젖을 념으로 예쁜 집들을 구경한 것이다. 정말, 내가 살 수 있을까 싶게 넓고 아름다운 집들 자동차 두 대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이 완비되어 있고 시스템 에어컨이 방마다 설치되어 있는 3층집들. 마당이 너무 좁다는 둥, 방이 너무 좁다는 둥, 창문이 너무 좁다는 둥, 전망이 별로 좋지 않다는 둥, 이런 저런 핑계로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창을 닫으면서는 오늘 누가 죽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창이 하나, 둘 닫히면은 모든 신문사의 헤드라인 뉴스로 뜬 ‘노회찬 의원의 부고 소식’이 보인다. 생각을 하면, 소식을 접하면 자꾸 눈물이 나서 보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의 평생에 걸친 노력이, 역사에 잘못 쓰여질까 무서운 마음이 들어서, 그게 비통할 따름이다.

아까운 목숨, 아까운 삶, 아까운 사람이었다.

 

이런 비극의 시간들 속에서 나만 행복해지고, 나만 편안해진다면 나는 그것을 즐길 수 있나, 즐길 것인가. 즐길 수 없어서 내게 주어지지 않는 평안인가.

날은 무시로 덥고, 마음은 뒤숭숭하고 갑작스러운 비보로 먹먹하다. 이런 와중에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지만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지치고 마음이 무겁다. 쓰리고 맵고 답답하고 어둡고 축축하다.

이재명 도지사에 대한 ‘뉴스’도 별로 맑지 않아서, 그의 모든 행보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실망하진 않았는데, 실망하라고 부추기고 그를 지지했던 생각과 마음을 변명하려고 중얼거리곤 한다. 전 생애를 걸친 노력이, 몇몇의 추문으로 인해서 잘못 쓰여질까, 역시나 걱정이 되는데 그것이 나에 대한 걱정인지, 그에 대한 걱정인지 잘 모르겠다.

 

2018.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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