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면 길가에 핀 양귀비를 단속한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 옵니다. 얼마 전에도 제주도에서 단속용 양귀비가 발견된 일이 있었는데요.
워낙 관상용 양귀비를 많이들 키우는데다, 재배 과정에서 혼종 개체가 생겨나다 보니 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궁금하기 때문에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를 알아봤어요. 참고용으로 봐주세요!
♣ 양귀비
양귀비라는 이름이 당나라 현종의 애첩의 이름에서 기원했다는 이야기는 꽤 알려진 사실입니다.
양귀비(학명 : Papaver somniferum L.)는 앵속, 아편꽃, 약단배라고도 불리는 양귀비과의 한해살이풀입니다. 5~6월에 흰색, 붉은색, 자주색 등의 꽃이 피고 50cm에서 150cm까지 자랍니다. 열매는 6월에 열립니다.
[ 아편의 마약 성분 ]
덜 익은 양귀비 열매에서 진액을 뽑아내 아편을 만듭니다. 여기에 알칼로이드가 다량 함유되어 있습니다.
양귀비 열매에는 20종 이상의 알칼로이드가 함유되어 있는데,
이중에서도 아이소퀴놀린 알칼로이드(isoquinoline alkaloid)인 모르핀(morphine), 코데인(codeine), 노스카핀(noscapine), 파파베린(papaverine), 테바인(thebaine), 나르세인(narcein) 등이 주요 독성분입니다.
모르핀, 코데인, 테바인은 중추 신경계에 작용하며, 진통제, 마취제 및 잠재적으로 중독성 화합물.
파파베린, 노스핀 등은 근육을 이완시켜 진정 효과.
모르핀은 주로 중추신경계 증상과 소화기계에 증상을 일으키는데, 환각성 마약제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코데인은 주로 통증을 완화하고, 기침을 억제하는 데 쓰이는 약물로 중추 신경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마약류로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노스카핀은 환각을 일으키는 마약 성분으로, 술이나 수면제 복용 시 중추신경물질의 효과를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항염증제로 진해제로 쓰이곤 합니다.
파파베린은 진정 효과와 혈관 확장 효과가 있는 약물입니다.
테바인은 중추신경을 흥분시킵니다. papaver bracteatum이라는 양귀비에서 추출합니다.
테바인을 합성해서 만든 약물이 모르핀의 1.5배 효력이 있다고 하는'옥시코돈'입니다. 옥시코돈은 주로 말기암 환자나 만성 통증 환자의 통증 완화를 위해 쓰이는 아주 강한 진통제입니다.
나르세인은 진정제의 효과가 있는 약물입니다.
[역사 속 양귀비]
아편 양귀비는 약 1만2천 년 전에 지금의 튀르키예(Türkiye)(시리아, 투르키예 남부, 이라크 북부를 가로지르는 산악 지역)에서부터 기르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양귀비는 마음을 안정시킨다 하여, 수메르인은 양귀비를 '기쁨의 식물(hul gil)'이라 불렀고,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도 '고통을 잠재우고, 모든 슬픔을 잊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죠. 진정제 성분과 진통제 성분이 있는 아편의 효과때문인지 고대 그리스에서는 '만병통치약'의 지위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기원전까지 가지 않더라도, 양귀비에서 추출한 '모르핀'은 19세기 전쟁의 포화 속에서 '만병통치약'처럼 취급되었고, 그 무렵 부유층에서는 모르핀을 유흥용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아서 코난 도일이 만들어낸 탐정 캐릭터 '셜록 홈즈'도 모르핀 중독자입니다. 2010년 영국 BBC에서 제작한 '셜록(Sherlock)'에선 홈즈가 '니코틴 중독자'로 바뀌어 있었지만 말입니다.
'아편'이란 단어는 가장 먼저 '아편전쟁'을 떠올리게 합니다. 영국은 청나라에서 온갖 것들을(특히 '차'를) 수입하는데 반해, 청나라는 영국으로부터 아무것도 수입을 하지 않으니 계속해서 '적자'가 쌓이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역전시키고자 영국이 생각해낸 것이 '아편'이었습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아편'을 왕창 생산해서 몰래몰래 청나라에 들입니다. 덕분에 영국은 오랜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되지만, 청나라는 거리거리에 '마약 중독자'가 넘쳐나게 됩니다. 영국이 청나라에 밀수출하던 아편이 발각된 뒤, 일 잘하는 관리가 아편을 바다에 버리면서 '갈등'이 발생하고 결국 '전쟁'으로 이어지는데 결국 구식 무기만 갖고 있던, '나이브했던' 청나라는 영국과의 전쟁에서 지게 되고 '불평등 조약'을 맺게 되지요.
이 사건때문인지, 지금도 중국에선 '마약 범죄'에 강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서양의 국가에서 영령기념일에 가슴에 꽂는 '개양귀비 조화'를 부착한 상태로 중국을 방문했다고 불쾌해한 적도 있다고 하죠. 그 정도로 중국에게 '아편', '양귀비'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의 상징이 되어 버렸습니다.
튀르키예는 예나 지금이나, 아편을 많이 생산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입니다. 전쟁 부상자에게 쓰였던 '모르핀'이라는 약을 만들기 위해선, '아편'이 많이 필요했는데 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가 전쟁에 참여하게 되어 아편의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게 됩니다. 그때 일본은 한반도를 아편 생산 기지로 이용하려 하기도 했죠.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생산한 아편은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고, 국내에 아편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독재 정권 시기를 거치며, 강력한 마약 규제 정책을 실시하면서 마약 사용자는 줄어들게 됩니다.
투르키예의 아편은 '정제된 약품'의 원료로서 생산되고 있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아편은 좀 더 안 좋은 의도로 만들어지는 것들입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의 아편은 탈레반이 군자금을 모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고통'을 재배하고 있는 형국이지요.
사실 양귀비는 그 이전부터 '죽음'을 상징하는 꽃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아편 양귀비의 라틴어 학명은 somus라는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somus는 잠, 졸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잠의 신 히프노스는 로마 신화의 솜누스(Somnus)와 같은 존재입니다. 히프노스(Hypnos)는 꿈의 신 모르페우스의 아버지이고, 죽음의 신 타나토스의 쌍둥이 동생입니다. 히프노스는 전쟁과도 관련이 있어요. 트로이 전쟁 때, 헤라의 부탁으로 제우스를 잠들게 하여, 그리스군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그가 사는 동굴 입구에는 양귀비, 대마초 같은 잠이 오는 식물로 가득합니다. 지하세계의 여왕 페르세포네도 양귀비와 관련이 있습니다.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딸 페르세포네를 찾아 헤매다 결국 찾지 못하고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데메테르의 발밑에서 양귀비꽃이 피어납니다. 데메테르는 꽃을 들여다 보다 졸음이 몰려오는 것을 느끼고, 씨앗을 입에 넣고 깊은 잠에 빠집니다. 양귀비 덕에 오랜만에 휴식을 갖게 된 것이죠.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죽음'은 곧, '영원한 잠'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신과 잠의 신이 '쌍둥이'처럼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그 오래된 이야기,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도 '죽음', '잠'과 함께 '양귀비'가 등장합니다. '양귀비'의 '마약성'은 그것이 발견된 시점부터 이미 오래도록 알려져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는 그것이 약처럼 쓰이기도 하고, 극약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뒤로도 그것은 중증도의 통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통증을 잊을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위안'입니다.('위안'은 양귀비의 꽃말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과잉'이나 '욕망'과 맞닿지 않았다면 '양귀비'나 '아편'은 그렇게 위험한 식물, 위험한 약물로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역사 속에서 아편 양귀비는 늘, 욕망과 죽음의 역사를 함께 해왔고 지금도 그 역사는 진행중입니다.
♣ 개양귀비
개양귀비(학명 : Papaver rhoeas L.)는 꽃양귀비, 애기아편꽃, 우미인초라고도 불립니다.
두해살이풀로 30~80cm까지 자라며 5~6월에 개화합니다. 열매는 6월에서 7월 사이에 볼 수 있습니다. 풀에 알칼로이드 성분이 미량 포함되어 있어 소화기 증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역사 속 개양귀비]
우미인은 초나라 장군 항우의 첩으로, 중국의 4대 미녀(서시, 왕소군, 양귀비, 우미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항우의 탈출 도우려 자결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미인의 무덤에 개양귀비가 피어났다고 하여, 중국에서는 개양귀비를 우미인초라 부른다고 합니다. 마약 양귀비는 악녀 '양귀비'의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라 하고, 개양귀비=우미인초는 '충정'의 상징인 '우미인'이란 인물에서 따온 이름이라 하니 참 어울리는 작명법이라 말들을 합니다만은, 꽃에는 죄가 없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서양에서는 매년 11월 11일을 '영령기념일'이라 하여 제1·2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를 추도하는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이날 사람들은 가슴에 '개양귀비 조화'를 다는데요, 빨간색 꽃잎에 검은 반점이 새겨진 조화입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아무 것도 자라지 않을 것 같았던 플랑드르 땅에 개양귀비가 삽시간에 퍼져나가는 것을 보고, 캐나다 군의관 존 매크레이가 '시'를 남겼는데 그 뒤로 개양귀비는 전쟁을 위로하는 상징적 매개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전사자를 위로하는 꽃이 된 이유가, 전쟁터에 핀 꽃이 '개양귀비'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양귀비는 '삭과'라 하여, 씨앗 주머니에 많은 양의 씨앗이 담기는데 이것이 마르면 부화관 아래 작은 구멍들이 열리고 작은 씨앗들이 튀어나와 2미터 거리까지 날아갑니다. 이 주머니 안에 천 개 이상의 씨앗이 들어 있다고 하니, 일단 수정이 되고 나면 벌판이 빨갛게 물드는 것은 그저 시간 문제일 뿐이겠죠. 게다가 양귀비는 당장 싹을 틔우지 않더라도 땅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싹을 틔우기도 한답니다. 이 엄청난 번식력과 생명력이 '부활'을 상징하게 되었던 것이고요. 죽음과 부활이라는 두 개의 의미를 갖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전쟁을 위로하는 꽃'으로, '반전을 기리는 꽃'으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관상용 양귀비 종류는 상당히 많습니다.
요즘 되게 흔하게 볼 수 있는 양귀비 중 하나가 '아이슬랜드 포피'인데, 아이슬랜드에서는 몇 달씩 꽃을 볼 수 있다지만 다른 양귀비들과 마찬가지로 얘도 '더운 날씨'를 싫어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봄에만 잠깐 볼 수 있는 꽃입니다. 마약성분이 없다 뿐이지, 독성 알칼로이드 성분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꽃의 색이 각양각색이라 관상용으로, 요즘에는 봄마다 볼 수 있는 정원용 꽃이 된 것 같아요. 이 꽃은 흰색이 우성이라고 하는데 어디서 보니 '양귀비'는 빨간색이 우성이라 같은 자리에서 계속 피어나면 처음엔 빨간색이 아니었더라도 나중엔 빨간색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이슬랜드 양귀비는 한 자리에서 계속 나면, 흰색 꽃이 되는 걸까요? 문득 궁금해지네요.
마지막으로, 아편양귀비와 관상용 양귀비의 차이를 살펴보도록 할게요.
[양귀비와 개양귀비 구별법]
이 글의 도입부에 링크한 KBS 뉴스 보도를 보면, 제주도 길가에 난 양귀비꽃이 관상용인지 마약류인지에 관해 두 경찰청(제주경찰청, 제주지방해양경찰청) 간에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고 하는데, 양귀비 열매라 하면 위 그림의 맨 오른쪽 열매와 같이 동글동글하고 줄기에도 털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 삭과 : 씨열매. 씨앗 주머니
⊙ 합판화관 : 꽃잎끼리 합쳐서 붙어 있는 화관
⊙ 엽상 : 중늑(中肋, midrib)의 가운데에 못미치는 결각(缺刻, incision)에 의해서 둥그런 무늬의 가장 자리를 갖는 모양.
제가 며칠 동안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잎'과 '줄기'의 모양을 잘 관찰해야 양귀비와 꽃양귀비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양귀비의 줄기는 잔털 없이 매끈하거나 가시 같은 굵은 털이 듬성듬성 있고, 잎은 쌈채소같이 넓고 줄기를 감싸듯 자랍니다. 삭과 위의 암술 머리도 쫑긋 서 있는 모양새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삭과가 갸름한지 둥근지에 따라 다르다기 보다는 암술 머리를 확인해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위의 표는 대체로 '위키백과'의 정보를 정리한 것이고, 표에 첨부된 사진은 '양귀비'를 빼곤 거의 직접 찍은 것들입니다.
최근 제주도에서 발견된 양귀비에서는 모르핀, 코데인, 파파베린과 같은 마약 성분이 검출되었다고 하는데요. '마약 성분'이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잘못 먹으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식물이니, 단속용 양귀비와 관상용 양귀비를 잘 구분해 두었다가 발견 즉시 경찰에 신고하는 게 좋겠습니다. 지지난주쯤 연합뉴스 보도로는 단속용 양귀비를 '검은 반점이 있는 붉은색이 주류를 이루며, 흰색, 분홍색 등 다양하다'고만 소개했습니다. 이런저런 사진들을 보니, 검은 반점이 다소 그라데이션되듯 붉은색이나 분홍색 등의 꽃잎을 물들이는 특색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잎의 모양과 꽃의 모양, 줄기의 모양 등을 꼼꼼히 보시고, 꼭 신고해주세요. :)
덜 익은 삭과에서 채취하는 소위 마약 성분은 '양귀비(Papaver somniferum)'를 비롯한 몇몇 양귀비 종에서만 생산되지만, 관상용 양귀비, 꽃양귀비의 풀에도 '독성'은 존재합니다. 그러니, 예쁜 꽃은 눈으로만 보기로 해요!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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